귀신축사 축귀 치유사역 부정하는 거짓선자들,성령 모독죄 성령 훼방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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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211.♡.223.98) 작성일 26-10-22 09:37 조회 16 댓글 0본문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권능을 부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축사와 신유의 역사를 훼방하는 자들에 대한 영적·성경적 조명
서론: 왜 이 글을 쓰는가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가장 슬픈 현상 중 하나는,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교회라는 이름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훼방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가고, 오랜 질병이 떠나가며, 묶였던 영혼이 자유케 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이를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심리적 현상이다",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다", "귀신 처소다"라며 정죄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닙니다. 이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동역자의 발목을 잡는 행위이며, 어둠에 갇힌 영혼이 빛으로 나오는 길을 막아서는 영적 방해입니다. 이에 성경적 진리에 비추어 그 실체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사역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적인 오류 -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부인함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23)
예수님은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친히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축사와 신유는 복음의 부록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증거입니다. 죄로 인해 사망과 질병과 귀신의 압제 아래 있던 인류를 해방시키러 오신 예수님의 권세가 그대로 드러나는 통로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룩한 축사 사역을 향해 "그건 빙의가 아니라 정신병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미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신유의 역사를 "기적은 사도 시대에 끝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들이 훼방하는 대상은 한 사람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그 사역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2. 가장 두렵고 엄중한 경고 - 마태복음 12장의 성령 모독죄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분노하신 장면은 언제입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그러하셨지만,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둔갑시킨 바리새인들을 향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자, 무리들은 놀랐지만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할 수 없느니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1-32)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어둠에서 건져내시고, 귀신의 집을 허무시며 자유케 하시는 그 거룩하고 자비로운 역사를 보고도, "저것은 귀신의 역사다", "저곳은 귀신들의 소굴이다", "이적에 미혹된 집단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방하는 것은, 2천년 전 바리새인들이 범했던 그 죄와 무엇이 다릅니까?
한 사람의 인격과 사역을 넘어,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격과 능력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영적 위치에 스스로를 세우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방해하는 자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3.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시대적 영적 교만
사도 바울은 말세를 향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다닙니다. 신학을 논합니다. 그러나 정작 복음의 핵심인 '능력'을 부인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가 끊어지는 것,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귀신이 떠나가는 것, 성령의 능력으로 병이 치유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두 가지 논리를 사용합니다.
첫째, cessationism, 즉 성령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의 은사가 특정 시점에 중단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17-18)
이 약속에 유효기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신 현재 진행형의 위임입니다.
둘째, 율법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영적인 것을 재단하려는 교만입니다. 니고데모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했듯이, 성령의 역사는 이성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고전 2:14). 자신의 신학적 틀과 경험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정죄하는 것은, 마치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바다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영적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이해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4. 복음의 본질은 자유케 함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축사를 하고, 왜 신유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함도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갈라디아서 5:1)
한 영혼이 음란의 영, 분노의 영, 우울과 자살의 영, 질병의 영에 묶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나와 부르짖을 때, 그 결박이 끊어지고 참된 자유를 얻어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예수님이 그토록 피 흘려 사신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 거룩한 자유의 사역을 훼방하는 것은, 결국 한 영혼이 자유 얻는 것을 방해하여 다시 어둠의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어둠의 간계를 분별하고 단호히 대적해야 합니다.
결론: 흔들리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성령의 역사를 비방하고 훼방하는 언설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850명과 맞섰을 때, 그는 다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승리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진 법적 권세를 선포하십시오. 그 이름 앞에서는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귀신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며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영광을 이 땅에 나타내는 거룩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주깁볼목사 010 3438 1859
서론: 왜 이 글을 쓰는가
오늘날 교회 안팎에서 가장 슬픈 현상 중 하나는, 세상으로부터가 아니라 교회라는 이름 안에서 성령의 역사가 훼방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쫓겨나가고, 오랜 질병이 떠나가며, 묶였던 영혼이 자유케 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도, 이를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지 않고 "심리적 현상이다", "거짓 선지자의 미혹이다", "귀신 처소다"라며 정죄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학적 견해 차이가 아닙니다. 이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동역자의 발목을 잡는 행위이며, 어둠에 갇힌 영혼이 빛으로 나오는 길을 막아서는 영적 방해입니다. 이에 성경적 진리에 비추어 그 실체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사역 자체를 부정하는 근본적인 오류 - 성령의 권능과 하나님 나라의 증거를 부인함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마태복음 4:23)
예수님은 단순히 도덕적 가르침을 주신 분이 아니십니다. 친히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마태복음 12:28)
축사와 신유는 복음의 부록이 아니라, 복음 자체의 증거입니다. 죄로 인해 사망과 질병과 귀신의 압제 아래 있던 인류를 해방시키러 오신 예수님의 권세가 그대로 드러나는 통로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거룩한 축사 사역을 향해 "그건 빙의가 아니라 정신병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미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의 본질을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는 신유의 역사를 "기적은 사도 시대에 끝났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들이 훼방하는 대상은 한 사람의 사역자가 아닙니다. 그 사역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살아계신 성령 하나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2. 가장 두렵고 엄중한 경고 - 마태복음 12장의 성령 모독죄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가장 강력하게 분노하신 장면은 언제입니까?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정죄하는 자들을 향해서도 그러하셨지만, 성령의 역사를 사탄의 역사로 둔갑시킨 바리새인들을 향해서는 영원한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자, 무리들은 놀랐지만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할 수 없느니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2:31-32)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어둠에서 건져내시고, 귀신의 집을 허무시며 자유케 하시는 그 거룩하고 자비로운 역사를 보고도, "저것은 귀신의 역사다", "저곳은 귀신들의 소굴이다", "이적에 미혹된 집단이다"라는 프레임을 씌워 비방하는 것은, 2천년 전 바리새인들이 범했던 그 죄와 무엇이 다릅니까?
한 사람의 인격과 사역을 넘어,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인격과 능력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영적 위치에 스스로를 세우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방해하는 자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3.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시대적 영적 교만
사도 바울은 말세를 향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를 다닙니다. 신학을 논합니다. 그러나 정작 복음의 핵심인 '능력'을 부인합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죄가 끊어지는 것,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귀신이 떠나가는 것, 성령의 능력으로 병이 치유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불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두 가지 논리를 사용합니다.
첫째, cessationism, 즉 성령의 은사는 사도시대에 끝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성령의 은사가 특정 시점에 중단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마가복음 16:17-18)
이 약속에 유효기간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신 현재 진행형의 위임입니다.
둘째, 율법적이고 이성적인 잣대로 영적인 것을 재단하려는 교만입니다. 니고데모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했듯이, 성령의 역사는 이성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일은 영적으로 분별해야 합니다(고전 2:14). 자신의 신학적 틀과 경험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정죄하는 것은, 마치 개구리가 우물 안에서 바다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영적 무지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의 이해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시도,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4. 복음의 본질은 자유케 함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왜 축사를 하고, 왜 신유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람을 모으기 위함도 아닙니다.
복음의 본질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 8:32)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갈라디아서 5:1)
한 영혼이 음란의 영, 분노의 영, 우울과 자살의 영, 질병의 영에 묶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나와 부르짖을 때, 그 결박이 끊어지고 참된 자유를 얻어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예수님이 그토록 피 흘려 사신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이 거룩한 자유의 사역을 훼방하는 것은, 결국 한 영혼이 자유 얻는 것을 방해하여 다시 어둠의 자리에 머물게 하려는 사탄의 전략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배후에서 역사하는 어둠의 간계를 분별하고 단호히 대적해야 합니다.
결론: 흔들리지 말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성령의 역사를 비방하고 훼방하는 언설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850명과 맞섰을 때, 그는 다수가 아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함으로 승리했습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가진 법적 권세를 선포하십시오. 그 이름 앞에서는 모든 무릎이 꿇고 모든 귀신이 떠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영혼을 살리고 치유하며 자유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붙들고 끝까지 하나님 나라의 권능과 영광을 이 땅에 나타내는 거룩한 증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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