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심장으로 귀신축사 치유사역 임하는 킹덤빌더교회 주깁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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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211.♡.223.98) 작성일 26-08-20 09:49 조회 21 댓글 0본문
축사사역자의 예수의 심장
축사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무게가 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실제로 귀신의 역사로 고통받는다고 호소하는 성도를 직접 만나 함께 기도하고, 밤늦게까지 붙들고, 때로는 반복해서 축사하며 그 영혼이 자유를 얻도록 섬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축사사역은 단순한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어야 한다. 때로는 성도가 오랜 시간 고통받아온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가족들의 눈물을 마주해야 하며, 사역자 자신도 지치고 탈진할 만큼 기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축사사역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예수의 심장이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
복음서에는 귀신의 역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고통받는 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묶인 자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마음이 상할 수 있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딸을 살리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을 예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셨다.
축사사역자가 가져야 할 마음도 바로 이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아니라
“저 영혼이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귀신과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축사사역의 중심은 귀신 자체가 아니다.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가 귀신을 쫓는 것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며, 보혈을 의지해야 한다.
사역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져야 한다.
“귀신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 앞에서
예수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축사 사역을 보고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गंभीर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귀신의 힘을 빌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무거운 말이다.
은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오늘날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면서 축사와 방언과 치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면, 과연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모든 영적 현상을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무조건 악한 영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말씀 앞에서 분별해야 한다.
소수라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축사사역을 하는 교회와 사역자들은 때때로 오해를 받는다.
이단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비성경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중심에 두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역이 성도에게 어떤 열매를 맺게 하는가이다.
어떤 성도가 오랜 시간 영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여러 교회를 찾아갔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축사사역자를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 그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닐 수 있다.
“당신이 틀렸다”는 말보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필요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 시간을 내고, 함께 울고, 기도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목자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강단의 말씀과 현장의 사역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귀하다.
그러나 말씀을 들은 성도가 예배당 문을 나선 뒤 삶의 현장에서 무너질 때, 누군가는 그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에게 기도해 주고,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주어야 한다.
신앙은 지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성령을 의지하여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도 필요하고, 기도하는 사역도 필요하며,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섬기는 사역도 필요하다.
서로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성경 안에서 분별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축사사역자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랑이다
귀신과 싸우는 사역을 하다 보면 사역자 자신도 지친다.
기도가 길어지고 체력이 소모된다.
때로는 성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 낙심하기도 한다.
사역자 자신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성도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사역자 자신이 탈진해 버린다면 오래 사역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러 물러가셨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에게는 성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영혼과 몸을 돌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되, 자신까지 완전히 소진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오래 살아 있어야 더 많은 영혼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성령의 불을 말할 수 있다.
보혈의 능력을 말할 수 있다.
기름부음을 말할 수 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말할 수 있다.
방언과 치유와 축사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예수님 없는 능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귀신에게 고통받는 성도가 자유를 얻고,
상처받은 사람이 회복되고,
절망한 사람이 다시 소망을 얻고,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며,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축사사역자가 바라는 열매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의 진짜 무기는 말의 능력도, 사역자의 명성도, 교단의 크기도 아니다.
예수의 심장이다.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마음.
그리고 모든 영광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마음.
우리가 소수라 해도,
오해를 받아도,
때로는 이단이라는 말을 들어도,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이 축사사역자의 기도이고,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의 심장이다.
축사사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들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무게가 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귀한 사역이다. 그러나 실제로 귀신의 역사로 고통받는다고 호소하는 성도를 직접 만나 함께 기도하고, 밤늦게까지 붙들고, 때로는 반복해서 축사하며 그 영혼이 자유를 얻도록 섬기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축사사역은 단순한 지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있어 주어야 한다. 때로는 성도가 오랜 시간 고통받아온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가족들의 눈물을 마주해야 하며, 사역자 자신도 지치고 탈진할 만큼 기도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축사사역자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이 아니라 예수의 심장이다.
예수님처럼 한 영혼을 바라보는 마음
복음서에는 귀신의 역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고통받는 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묶인 자들을 자유롭게 하셨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나아왔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마음이 상할 수 있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딸을 살리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을 예수님께서 외면하지 않으셨다.
축사사역자가 가져야 할 마음도 바로 이런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가 아니라
“저 영혼이 어떻게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귀신과 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축사사역의 중심은 귀신 자체가 아니다.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다.
우리가 귀신을 쫓는 것은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며, 보혈을 의지해야 한다.
사역자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져야 한다.
“귀신의 힘을 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 앞에서
예수님께서도 귀신을 쫓아내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축사 사역을 보고도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매우 गंभीर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을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귀신의 힘을 빌렸다”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무거운 말이다.
은사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오늘날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면서 축사와 방언과 치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들을 모두 잘못되었다고 판단한다면, 과연 우리는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물론 모든 영적 현상을 무조건 성령의 역사라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무조건 악한 영의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말씀 앞에서 분별해야 한다.
소수라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축사사역을 하는 교회와 사역자들은 때때로 오해를 받는다.
이단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비성경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다수라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중심에 두고 있는가, 그리고 그 사역이 성도에게 어떤 열매를 맺게 하는가이다.
어떤 성도가 오랜 시간 영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여러 교회를 찾아갔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국 축사사역자를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 그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논쟁이 아닐 수 있다.
“당신이 틀렸다”는 말보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이 필요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을 위해 누군가 시간을 내고, 함께 울고, 기도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목자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강단의 말씀과 현장의 사역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귀하다.
그러나 말씀을 들은 성도가 예배당 문을 나선 뒤 삶의 현장에서 무너질 때, 누군가는 그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두려움에 떠는 사람에게 기도해 주고,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족이 감당하지 못하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 주어야 한다.
신앙은 지식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과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성령을 의지하여 실제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도 필요하고, 기도하는 사역도 필요하며, 성령의 은사를 따라 섬기는 사역도 필요하다.
서로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 성경 안에서 분별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축사사역자의 가장 큰 무기는 사랑이다
귀신과 싸우는 사역을 하다 보면 사역자 자신도 지친다.
기도가 길어지고 체력이 소모된다.
때로는 성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때 낙심하기도 한다.
사역자 자신이 공격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다.
성도를 살리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사역자 자신이 탈진해 버린다면 오래 사역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도 기도하러 물러가셨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에게는 성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영혼과 몸을 돌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되, 자신까지 완전히 소진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오래 살아 있어야 더 많은 영혼을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성령의 불을 말할 수 있다.
보혈의 능력을 말할 수 있다.
기름부음을 말할 수 있다.
예수 이름의 권세를 말할 수 있다.
방언과 치유와 축사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셔야 한다.
예수님 없는 능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능력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이다.
귀신에게 고통받는 성도가 자유를 얻고,
상처받은 사람이 회복되고,
절망한 사람이 다시 소망을 얻고,
하나님을 떠났던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며,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축사사역자가 바라는 열매다.
그러므로 축사사역자의 진짜 무기는 말의 능력도, 사역자의 명성도, 교단의 크기도 아니다.
예수의 심장이다.
한 영혼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는 마음.
그리고 모든 영광을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마음.
우리가 소수라 해도,
오해를 받아도,
때로는 이단이라는 말을 들어도,
한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주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이 축사사역자의 기도이고,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예수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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